▲ 이두(언론인)
- 전 조선일보 인천취재본부장
- 전 인천일보 일간경기
- 현대일보 편집국장
강화도에 또 새해를 알리는 해가 뜬다. 2025년 을사(乙巳)년 뱀의 해다. 12간지 동물 중 뱀은 교활하고 사특하다고 여겨져 일반인에게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그러나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 주고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올해는 강화군민 모두가 생존력 강한 뱀의 지혜를 익혀 어려운 세상살이를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으면 한다. 생각지도 못한 계엄과 탄핵, 대형 참사가 일상을 힘들게 하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지혜롭게 삶을 헤쳐나가고, 강화군은 강화도의 발전과 강화군민의 안전을 지키고 행복을 위한 ‘열린 군정’을 펼쳐나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150년전 강화도에서 한반도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1875년 강화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운양호(雲揚号) 사건이다. 조선은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강화도에서 일본군과 한바탕 전투를 치른다. 일본군은 조선 해안가를 탐사한다며 조선의 허락도 없이 무모하게 강화도 초지진에 접근을 시도했다. 일본군은 무기를 동원해 조선군과 민간에 만행을 부렸다. 강화도에서 영종도로 간 일본군은 많은 조선인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사건은 다음해 조선과 일본이 체결하는 강화도조약의 단초가 됐다. 이후 조선은 조선의 문을 두드리는 외부 세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채 우왕좌왕하다 35년후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는 비참한 지경에 이른다.
운양호 사건이 일어나기 이미 전 강화도 일대에는 많은 외국의 이양선(異樣船)들이 출몰해 강화도와 조선 정부를 압박했다. 조선군은 강화도 일대에서 1866년 프랑스군과, 1871년에는 미국군과 전투를 벌여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당시 강화도는 한양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였다. 서해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강화를 거쳐야 했다. 그만큼 강화는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같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국 세력들은 강화로 접근했으며 강화는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문제는 조선이 물밀 듯 밀려오는 외부 세력을 밀어내기에만 급급했을 뿐 전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실권자인 대원군은 외국과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힘없는 조선이 아무 대책없이 문만 닫는다고 해서 그 문이 닫아지는 것인가. 조선은 외부에 움직임에 전혀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외부는 조선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서양은 물론이고 서양 문물을 막 배우기 시작한 일본은 그들이 배운 걸 조선에 써먹으며 조선을 호시탐탐 노렸다. 세계 강대국들이 짜놓은 제국주의 판에 조선만 독야청청하며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오랑캐라고 배척하고 조선은 당신네와 상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오지않을 그들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은 세계적인 움직임을 오직 중국을 통해서만 들어야 했다. 중국만이 다른 세상을 볼수 있는 유일한 창이었다. ‘발톱빠진 호랑이’인 중국도 서양 세력에 쫓겨 ‘자기 코가 석자’였다. 힘도 없으면서 욕심만은 가득해 조선을 무조건 자기 품안에만 두려고했지 결코 도움을 줄 수 없었다. 19세기 후반들어 서양의 제국주의는 “밖으로, 밖으로”를 외치며 땅을 따먹기 위해 지구 곳곳에 발톱을 드러냈다. 해가 지지않는 나라라 불렸던 영국은 세계 지도를 들고 세계를 누볐다. 영국은 러시아가 조선 동해를 통해 남하할 것을 대비해 거문도를 무단 점령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은 영국이 지구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때였다.
150년이 흘렀다. 강화도 일대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지금도 많은 교훈을 전해준다. 시대적 흐름을 읽지못하고 변화와 개방을 외면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역사와 현실은 지금도 끊임없이 강화도에 변화와 개방을 요구한다. 변화와 개방의 첨병들이 바로 강화군 공무원들이다. 공무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그들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에 따라 강화군의 미래가 결정되고 그려진다.
올해는 강화군정을 펼치는 공무원들의 시야(視野)와 사고(思考)가 강화군에만 머물지 말고 인천으로, 대한민국으로, 세계로 한껏 넓혀졌으면 한다. 국내외 벤치마켕을 하더라도 강화도에 어떻게 접목시킬지 적극적으로 진지한 고민을 한번이라도 더 해보기를 바란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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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벽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