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이었어요. 그때 제주도에서 해군 국제 관함식이 열렸습니다. 대통령이 탄 우리 구축함에 수자기를 높이 내걸었습니다. 이를 본 일본 방송에서 한국을 비난했습니다. 이웃 나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죠.
일본 사람들이 수자기를 보고 발끈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순신 장군을 연상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은 역사를 아는 일본인들에게 어쩔 수 없는 열등감의 대상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배에 수자기가 걸렸던 것을 그들이 압니다. 그래서 수자기를 이순신장군기(李舜臣將軍旗)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수자기(帥字旗)는 이순신 장군만 썼던 게 아닙니다. 조선시대 각 군영에 걸었던 대장기입니다.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선후기에 상당히 많았던 수자기가 어인 일인지, 지금 딱 하나만 남았습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수자기가 바로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입니다. 귀하디귀한 수자기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니라 우리 강화역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어재연 장군이 한양에서 광성보로 올 때 수자기를 갖고 온 게 아닐 겁니다. 강화의 군영인 진무영에 있던 것을 광성보로 옮겨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론상 강화 진무영의 대장은 진무사입니다. 강화유수가 진무사를 겸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지휘관은 진무중군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어재연을 진무중군으로 삼아 강화로 급파했습니다. 그래서 어재연이 진무영의 대장기를 걸고 미군과 전투를 벌인 것입니다. 수자기의 고향이 강화도인 셈입니다. 그동안 강화역사박물관이 관리해 온 것은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3월에 수자기가 미국으로 가야 한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자기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1871년(고종 8) 신미년에 미군이 조선을 침공하니, 이를 신미양요라고 합니다. 하필이면 강화도로 쳐들어왔습니다. 6월 10일(음력 4월 23일)에 초지진을 점령한 미군은 다음날인 6월 11일(음력 4월 24일)에 덕진진과 광성보까지 무너트립니다.
어재연의 조선군은 광성보에서 침략군에 맞서 싸우다 싸우다, 쓰러졌습니다. 미군은 광성보에 나부끼던 수자기를 끌어내려서 가져갔습니다. 다른 군기 수십 개와 불랑기 등도 쓸어갔습니다.
광성보 전투가 벌어진 그날, 미군이 수자기를 처음 본 것이 아닙니다. 며칠 전 미군은 염하를 거슬러 오르며 불법적인 ‘탐측’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미군은 광성보에서 펄럭이는 거대한 황색 깃발을 군함 안에서 보았습니다. 글자가 새겨진 것도 알았습니다. 중국인 통역이, ‘帥’라고 쓴 것인데 대장 깃발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미군은 이때부터 수자기를 노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깃발치고 정말 큽니다. 가로 415㎝, 세로 440㎝ 정도 크기입니다. 두께도 제법 두툼합니다. 재질은 삼베입니다. ‘帥’라는 글씨는 별도의 천을 검은색으로 염색해서 안으로 접어 바느질한 것입니다. 바탕 여기저기 보이는 얼룩은 핏자국입니다. 수자기에는 여러 개의 총구멍과 칼로 베어진 자국들도 있습니다.
조선의 병사들이 수자기만은 꼭 지켜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수자기 앞에 서서 달겨드는 미군을 막았을 겁니다. 미군은 조선 군사들을 칼로 찌르고 벴겠죠. 그러는 과정에서 깃발도 베어졌을 겁니다. 조선 병사들의 피가 깃발에 튀어 퍼졌을 겁니다. 지금 수자기가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것은, 미국에서 수자기를 세탁하고 찢어진 부분을 수선했기 때문입니다.
미군이 탈취해 간 수자기는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됐습니다. 미국 해사에는 우리 수자기 등 외에도 다른 나라 깃발 250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미국이 그동안 외국과 전쟁하면서 빼앗아 간 깃발들입니다.
왜 해군사관학교에 군기를 모아두었을까요?
1849년에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미 해군 장관에게 “전쟁 중 적의 군기, 색상기 등을 몰수할 것을 명령하고 보관·보존·전시를 위해 미 해군사관학교를 관리기관으로 정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결과라고 합니다.
프랑스군이 강화 외규장각에서 훔쳐 간 의궤 반환 협상이 추진되고 있던 2007년, 미국에서, 드디어, 수자기가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양국의 오랜 협상의 결과입니다. 4년 뒤인 2011년에는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의궤도 돌아왔습니다.
의궤는 완전 반환이 아니라 ‘영구 대여’ 형식으로 왔습니다. 법적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이지만, 영원히 반환이 필요 없는 대여입니다. 당시 영구 대여에 반대하는, 완전 반환을 요구하는 여론도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수자기 사건을 겪고 보니 차라리 ‘영구 대여’가 잘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7년에 돌아온 수자기는 ‘10년 장기 대여’ 조건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10년 장기 임대’라는 표현을 자꾸 씁니다만, ‘임대’가 아니라 ‘대여’라고 써야 적절합니다. 임대(賃貸)는 ‘일정한 금액의 돈을 받고 자기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줌’이라는 뜻이고 대여(貸與)는 그냥 빌려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돈을 주고 수자기를 빌려온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니 임대가 아니라 대여인 것입니다.
처음 대여해 올 때 우리는 완전 반환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미 해군사관학교가 거절했습니다.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이미 1814년에 ‘미 해군 전리품 깃발 수집’과 관련한 의회법을 제정해서 상대국의 반환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1849년에는 미국 대통령이 교전국의 군기를 몰수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를 개정하지 않는 한 수자기 반환은 불가하다는 것이 미 해군사관학교의 논리였습니다.
한국인의 정서로 볼 때, 수자기는 미군의 약탈품입니다. 원래 우리 것을 미국이 빼앗아 간 것이니 돌려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반면에 미국은 수자기를 전리품으로 봅니다. 법률용어로서 전리품(戰利品)은 ‘전시(戰時)에, 적으로부터 압수, 억류와 동시에 소유권 취득의 효과가 발생하는 물품’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수자기가 전리품이라 소유권이 미국에 있고 따라서 한국에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입니다.
‘10년 장기 대여’ 조건으로 2007년에 귀환한 우리의 수자기! 2017년이 10년 된 해였습니다. 계약 조건대로라면 그때 수자기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만, 다행히 2년마다 재계약하면서 2024년 2월 현재까지 우리가 수자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강화역사박물관은 안전한 보관, 관리를 위해 상설 전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 특별 전시만 했습니다. 대신 갑곶돈대 강화전쟁박물관 2층에 진품과 흡사하게 만든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반납해 줘!”
지난해에 미 해군사관학교가 수자기를 돌려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왜 돌려달라는지 미국 나름의 명분을 댔겠지요. 한겨레신문(2024.01.30.)은 “2025년부터 3년 동안 여는 ‘동아시아 특별전’에 수자기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이 특별전에는 미군이 전쟁에서 노획한 각국의 깃발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깃발 전시회 할 거니까 돌려달라고 하는데 어찌 안 줄 수 있겠어요. 줘야지요.
문제는, 전시회가 끝나면, 미 해군사관학교가 다시 우리에게 수자기를 내줄 것인가, 이 점입니다. 그들이 수자기 재대여(再貸與)를 “검토해보겠다”고 대답했답니다. 검토해보겠다는 말은 긍정의 신호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사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최선의 결과는 완전 반환입니다. 약탈문화재 반환을 지지하는 국제 여론이 점점 강해지는 추세입니다. 2007년에 수자기가 국내로 돌아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토마스 듀버네이 영남대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얻는 것이 국제적으로 합법화된 것은 1907년 헤이그협약 이후이다.”(인천일보, 2021.05.17.)
미국의 주장처럼 수자기를 전리품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1907년 헤이그협약 이전에 벌어진 신미양요 때 가져간 것이니, 한국이 수자기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하지만, 완전 반환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때로 최선보다 차선이 더 좋기도 합니다. 차선은, 외규장각 의궤처럼 ‘영구 대여’하는 것이겠지요. ‘영구 대여’를 현실적 목표로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뭐, 정 안되면 지금처럼 ‘장기 대여’ 형식으로라도 찾아와야지요.
앞으로 말입니다, 수자기 반환(대여) 요구의 판을 키워서 대대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저쪽에 부담을 주지 않게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일장일단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어떻게 대응하든 머리로 대결하는 것보다 저들 가슴을 움직이는 접근법이 더 유효하리라고 저는 여깁니다.
수자기는 단순한 깃발이 아닙니다. 신미양요의 상징입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피와 눈물이 흠뻑 밴 문화유산입니다. 비록 떠나가지만, 잊어서는 아니 될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이제라도 수자기를 더 부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요. ‘이미 일이 잘못된 뒤에는 후회하고 손을 써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로 쓰입니다. 하지만, 뒤집어 해석해봅니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고쳐야 합니다. 고쳐야 다시 잃지 않습니다. 강화인들이 먼저 수자기의 소중함과 가치를 인식하고 널리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경남 통영시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자기를 일종의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수자기가 나부낍니다.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사진으로만 봤는데요, 세병관(洗兵館) 마당에는 아주 큰 수자기가 섰습니다. 근사합니다. 물론 통영의 수자기는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우리 강화에서도, 강화전쟁박물관 마당이나 광성보에서, 펄럭이는 커다란 수자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관리·유지가 어렵다면 작은 수자기를 여러 개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강화의 국방유적마다 군기가 펄럭입니다. 전국 어디나 똑같은 ‘청룡기·백호기·주작기·현무기’입니다. 이보다는 수자기가, 우리 강화의 역사적 가치와 개성을 잘 보여줍니다. 강화를 찾는 탐방객들이 수자기를 보면서 수자기 귀환에 관심을 더 두게 될 것입니다.
수자기 들어간 열쇠고리가 있더군요. 인터넷서점에서 어느 책의 사은품으로 준다는 광고에 나오는데요, 모양이 제법 그럴듯했습니다. 팬시상품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MBC 음악 프로에 정우라는 가수가 출연했는데 그가 입은 점퍼가 화제가 됐습니다. 일본에서도 인기 있는 가수라는데, 독도와 수자기를 새긴 점퍼를 입은 겁니다. 강화에서 판다면 저도 하나 사고 싶었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한 소절로 오늘 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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