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재’ 이야기

 ▲ 이경수
- 강화읍 출생, 거주
- 전 양곡고등학교 역사 교사


국보 1호 남대문, 보물 1호 동대문, 사적 1호 포석정. 외우던 기억이 나실 겁니다. 참성단이 사적 136호인 것도 알고 계신 분이 계실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고려궁지가 사적 몇 호였더라?’ 찾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2021년 11월 19일부터 문화재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제도가 변경됐거든요.


그때 문화재청이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문화재 지정번호는 국보나 보물 등 문화재 지정 시 순서대로 부여하는 번호로, 일부에서 문화재 지정순서가 아닌 가치 서열로 오인해 서열화 논란이 제기되는 경우가 있었다.이에 문화재청은…‘지정(등록)번호’를 삭제하고 문화재 행정에서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도록 정책을 개선하였다.”


이를테면 보물 30호가 보물 70호보다 더 가치 있는 문화재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어서, 지정번호를 삭제한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국보 1호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도 문화재 지정번호를 없애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랜 기간, 남대문(공식 호칭은 ‘서울 숭례문’)이 우리나라 국보 1호 자격이 있는가, 논쟁이 있었잖아요.


▲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보물)

어떤 문화재의 공식 이름을 확인하려면,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는 게 좋습니다. 검색해보면 국보, 보물, 사적, 이런 표기만 있고 지정번호는 모두 삭제됐습니다. ‘고려궁지’를 검색하면 예전에는 ‘사적 133호 고려궁지’라고 나왔는데 지금은 ‘사적 강화 고려궁지’라고 나옵니다.


간단해져서 좋습니다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문화재가 여럿 있어서 문제가 됩니다. 동명의 문화재는 그동안 지정번호로 구분했었는데, 이제는 구분이 곤란해진 것이죠.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국보 78호와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함께 모셔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같은데 지정번호를 삭제하고 보니 어찌 구분해서 말해야 할지 어려워진 것입니다.


SBS 보도(2022.09.11.)에 따르면, 국보와 보물 2,664건 중에서 동일한 이름으로 등록된 사례가 국보 7건, 보물 79건입니다. 강화 전등사에 소장된 ‘묘법 연화경 목판’이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그런데 보물로 지정된 똑같은 이름의 ‘묘법 연화경 목판’이 충남 개심사와 전남 대흥사에도 있어요.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이름 같은 지정문화재는 명칭 뒤에 괄호를 넣어 지정연도를 표기해서 구분하고 있더군요. 같은 해에 지정된 것은 2023-1, 2023-2, 이런 식으로 나눴습니다. 사례를 보면 이렇습니다. 전등사 묘법 연화경 목판은 ‘묘법연화경 목판(2016)’, 대흥사 것은 ‘묘법연화경 목판(2017-1)’, 개심사 것은 ‘묘법연화경 목판(2017-2)’.


▲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보물)

지자체마다 홈페이지에 해당 지역의 문화재 현황을 싣습니다. 문화재 지정번호를 정부가 삭제한 지 1년이 훨씬 지났으니까 지자체의 홈페이지에서도 번호가 사라졌겠죠? 강화군청 홈페이지로 가봅니다. 보물 10호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 보물 11-8호 사인비구 제작 동종-강화 동종, 보물 161호 강화 정수사 법당…. 살아있네요.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강화 인근 지자체 홈페이지를 확인해보았습니다. 김포, 고양, 파주 모두 강화처럼 문화재 지정번호를 지우지 않고 그냥 두었습니다. 아마도 삭제 후의 불편함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문화재’라는 용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문화재! 한자로 쓰면 文化財입니다. 재(財)는 재물이라는 뜻입니다. 재산(財産), 재정(財政) 식으로 쓰지요. 결국 ‘재(財)’는 돈을 의미합니다. 선조들이 남겨준 유물과 유적을 돈의 가치로 따진다? 좀 어색합니다. 무형문화재는 사실상 해당 기능을 보유한 ‘사람’을 지정한 것입니다. 사람도 문화재로 불리고 있는 셈입니다. 생각해보니 ‘문화재’라는 호칭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문제가 일찍부터 지적돼 왔습니다. 그래서 ‘문화재’ 대신 ‘문화유산’으로 쓰는 사례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올해 2월 2일에 문화재청이 ‘2023년 문화재청 주요업무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회변화·미래가치·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새로운 국가유산 보호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국가유산기본법’을 제정하고, ‘문화유산법’, ‘자연유산법’, ‘무형유산법’의 유형별 법체계로 재편한다.”


‘문화재’라는 용어를 ‘국가유산’으로 바꾸고, 분류 체계도 국제기준에 맞게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 등으로 개편한다는 것입니다.(MBC 뉴스, 2023.02.02.) 앞으로 ‘문화재’라는 말이 사라지고 대신 ‘문화유산’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계획대로라면, 문화재청이라는 기관명도 바뀌게 되겠지요.


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로 나뉩니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 등으로 분류합니다. 2021년 기준으로 국보 350건, 보물 2,293건, 사적 521건입니다. 사적은 한자로 史蹟이라고 씁니다. 역사의 흔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선사시대 유적, 산업·교통·주거생활에 관한 유적, 정치·국방에 관한 유적, 교육·의료·종교에 관한 유적, 제단·고인돌·고분·사당 등의 제사·장례에 관한 유적 중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사적으로 지정됩니다.


시·도지정문화재는 ‘특별시장·광역시장·특별자치시장·도지사 또는 특별자치도지사’가 지정하는 문화재입니다. 그러면 강화군수에게는 문화재 지정 권한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나 인천시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보존 가치가 높은 강화의 문화재를 ‘향토유적’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정수사의 함허대사 부도나 교동 봉수대 등이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보존하겠다고 자체적으로 지정한 향토유적, 그런 만큼 더 각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한편, 2011년에 문화재 작명 원칙이 새롭게 세워지면서 공식 이름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문화재의 ‘고유한 명칭’에 지역명을 덧붙여 적어 문화재의 이해를 높이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다만, 2개 이상의 지역에 걸쳐 있는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 등과 궁궐, 종묘와 사직단 등 국가적 상징성을 갖는 문화재는 지역명을 함께 적지 않기로 했다.”(문화재청 보도자료, 2011.07.28.)


경복궁은 그대로 경복궁, 종묘는 그대로 종묘이지만, ‘한양도성’은 ‘서울 한양도성’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문화재 이름 앞에 지명을 붙이는 원칙이 선 것입니다. 사적 고려궁지는 ‘강화 고려궁지’가 공식 이름이 되었습니다. 삼랑성은 당연히 ‘강화 삼랑성’이 됐고요. 물론 강화 주민들이야, ‘강화 고려궁지’라고 부를 이유가 없지요. 그래도 교육 현장에서는 지명을 붙인다는 원칙을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전등사 철종(보물)

‘전등사 철종’도 보물입니다. 당연히 ‘강화 전등사 철종’이 돼야 했는데 어인 일인지 지금도 공식명칭이 ‘전등사 철종’입니다. 전등사 철종은 말 그대로 철로 만든 종입니다. 종은 대개 동으로 제작하는데 철로 제작했으니 희소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전등사 철종’은 우리나라 종이 아니라 중국 종입니다. 중국 송나라에서 제작됐는데 언젠가 우리나라로 왔고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음, 중국 종이 대한민국의 보물이라….
1974년에 국보 168호로 지정된 ‘백자 동화매국문 병’이 2020년에 지정 해제됐습니다. 지정 후 근 50년 만에 국보 지위를 취소한 것입니다. 조선의 도자기인 줄 알았는데 중국 원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중국 종 ‘전등사 철종’ 역시 보물 지정을 해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네요.


문화재청은 또 “지정 당시 ‘~지(址)’로 되어 있는 문화재는 복원 정도에 따라 ‘지(址)’를 삭제하기로 함”이라고 발표했습니다. ‘址’는 ‘터’라는 뜻입니다. 그동안 터만 있는 문화재를 ‘~지’로 이름했는데 그 터에 해당 건물이 복원되면 ‘지’ 자를 빼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대산사고가 복원됐기에 사적 ‘오대산사고지’를 ‘평창 오대산사고’로 이름 바꿨습니다. 그러면 인천시기념물로 지정된 ‘강화 정족산사고지’ 역시 ‘강화 정족산사고’로 수정해야 옳습니다. 사고가 번듯하게 섰는데, 여전히 사고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사진출처 문화재청)

문화재 명칭에 띄어쓰기 원칙도 적용됐습니다. 강화에서 출토된 것으로 여겨지는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이제 원칙적으로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으로 써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문화재 고유 명칭까지 띄어쓰기해야 하나, 살짝 의문이 듭니다.


정리하면, ‘문화재’를 ‘문화유산’으로 부르기로 한다, 문화재 지정번호는 사용하지 않는다, 문화재 명칭에 지역명을 넣는다, 해당 건물이 복원되면 명칭에서 ‘지’를 뺀다, 원칙적으로 문화재 명칭을 띄어쓰기해서 표기한다. 이렇게 됩니다.


강화의 지정문화재는 2022년 12월 31일 기준으로 137건이라고 합니다. 국가지정문화재 35건, 인천광역시 지정문화재 82건, 강화군 지정문화재 20건입니다. 관심이 가는 독자분께서는 강화군청 홈페이지(문화관광→문화재/역사→문화재 현황)에 들어가 보세요. 구체적인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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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벽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