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질병이 바꾼 역사

김 학 준
전) 서울신문 기자
현) 인천언론인클럽 대의원


다음달부터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화)’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3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가 사실상 종식 수순에 돌입했다. 코로나 유행은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전염과 확산에 따른 문제 외에도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여파가 심각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위키백과는 이를 자세히 분석했는데 양이 실로 방대하다. 일단 큰 맥락에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적 관점에서 조명했다. 아울러 국제관계, 인간의 심리, 불평등 문제, 지역별 영향에 관해서도 비중을 두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코로나가 역사를 바꿨다는 얘기다.


질병이 역사를 바꾼 사례는 적지 않다. 독일의 역사학자 로날트게르슈테는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여기에 실상이 잘 드러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페스트(흑사병)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염병이 있었지만, 사망자 수만 본다면 중세 유럽에서 유행한 페스트가 가장 큰 재앙이었다. 이 질환이 기승을 부렸던 1347년부터 1351년까지 4년 동안에만 2000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사망한 것이다. 한창 기세를 떨칠 때는 한 사람이 밤중에 페스트로 죽자 장례를 치르러 온 친구 2명과 기도차 온 신부, 시체를 나른 사람까지 모두 4명이 다음날 저승으로 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알베르 카뮈가 쓴 책 ‘페스트’에도 당시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프랑스 도시 ‘오랑’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자 관이 부족해 관을 재활용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페스트가 신이 내린 천벌이라고 생각해 속죄의 의미로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거나 기도를 했다. 또 개나 고양이가 원인이라고 생각해 죽이기고, 심지어는 집시와 유대인들이 질병을 몰고 왔다며 학살하기도 했다. 중세에 흔히 벌어진 마녀 사냥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전혀 효과가 없었기에 큰 혼란에 빠졌다.


그 당시 의사들은 페스트 감염을 피하기 위해 새의 부리 같은 기괴한 마스크를 쓰고, 그 안에 강한 향이 나는 약초를 채워 넣었다. 환자에 대한 치료법은 더욱 가관이었는데 불에 달군 쇠로 가래톳을 찌르고 정맥을 째서 피를 뽑거나, 심지어는 오줌으로 목욕을 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엉터리 치료법은 쇠약해진 환자를 더 빨리 죽게 만들뿐이었다. 페스트가 쥐에 의해 전파된다는 것은 1890년대 가서야 밝혀졌다.


천연두는 1만년 전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병이다. 천연두가 유달리 악명을 떨친 것은 1500년대에 유럽인들이 남아메리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유용한 무기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불과 600명의 병사를 이끈 코르테스(스페인 귀족 출신)가 1520년에 멕시코 아즈텍 제국(인구 500만명)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멕시코 원주민(인디오)들이 천연두에 감염돼 대거 사망했기 때문이다.


코르테스의 병사들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는 원주민들에게 고의로 천연두 균을 퍼뜨려 원주민의 95%가 천연두로 사망했다. 한 병사는 다음과 같은 목격담을 남겼다. “가옥과 논밭, 거리의 광장이 원주민 시체로 가득찼다. 그들의 시체를 밟지 않고는 한 발 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역시 스페인에서 온 피사로는 1532년에 234명의 병사만으로 천연두와 내전으로 이미 초토화된 잉카 제국(페루 일대, 인구 1200만 명)을 단숨에 정복했다. 남미 제국들은 사실상 전염병으로 무너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5월 8일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되었음을 선포했다. 비극으로 얼룩진 천연두 역사를 종식시킨 날이다.


아이러니 하게 전염병이 사회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페스트가 그 경우다. 페스트를 피해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신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종교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게 된다. 중세는 모든 영역이 종교적 관점에 매몰됨으로써 경제적, 지적, 문화적 퇴보를 일으켜 흔히 ‘암흑시대(Dark Ages)’로 불렸는데 비로소 출구를 찾은 것이다.


또한 페스트로 인구가 줄어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호전됐다. 농부나 수공업자들은 유리한 위치에서 지주와 협상할 수 있게 돼 중세시대 봉건제도(넓은 땅을 가진 영주가 자신의 땅에서 일하는 농노들을 지배하는 제도)가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사람들은 또 새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고, 귀족 출신이 아니더라도 돈을 많이 모아서 신분을 높인 사람들이 늘어났다. 유럽 ‘르네상스(인간성 회복을 위한 문화혁신 운동)’가 시작된 것이다. 결국 페스트로 인해 사회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비대면 사회를 겪으면서 인간을 홀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깨달았다는 점이다. 흔히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고 말하지만, 추상적 개념을 넘어 ‘연대와 협력이 생존의 조건’이라는 것을 피부로 공감하게 되었다. 약자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 역시 배가 되었다.


또 만남과 소통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뉴스에서나 보았던 화상회의 같은 것을 나와는 동떨어진 세상의 일로 여겼던 사람들이 일상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대면 교육과 진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도 등장했다. 사이버 대학 등을 통한 온라인 교육이 있었지만, 전체 교육현장으로 확산돼 교육의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 


비대면 진료(원격 진료)는 의료계의 반발로 당분간 실현이 쉽지 않겠지만,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과 당위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코로나는 전체적으로 볼 때 당연히 인류에게 닥친 비극이고 부정적인 현상이지만, 인간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긍정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래서 감히 ‘코로나의 긍정적 효과’라고 이름붙인다. 그토록 당했는데 얻은 것이 있어야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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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벽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