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조선시대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의 숭고한 행적이 서려 있는 보물 「이순신 장검(李舜臣 長劍)」을 국보로 지정하고,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에는 기존의 옥로(玉鷺, 갓 위를 장식하는 옥 공예품), 복숭아 모양 잔과 받침, 요대(腰帶, 허리띠) 외에, 요대를 보관했던 「요대함(腰帶函)」을 보물로 추가 지정하였다. 또한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난초 그림인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를 비롯해 「기장 고불사 영산회상도」, 「파주 보광사 동종」, 「불조삼경」 등 4건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국보로 지정된 「이순신 장검」은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었던 칼로, 길이가 약 2m에 달하며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한 쌍(두 자루)이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장검 1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이, 장검 2에는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 나무를 깎아 만든 칼집에는 몸에 찰 수 있도록 가죽 끈을 매달았으며, 칼자루 속 슴베에 새겨진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글귀로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 슴베: 칼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으로 칼자루와 칼날의 결합을 위해 필요한 부분
「이순신 장검」은 조선시대 군용 도검 형식이다. 나무틀 위에 어피를 감고 주칠을 한 칼자루,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기를 만들어 칼자루 표면에 부착한 금속판, 은입사기법으로 장식한 전통무늬, 칼날에 새긴 명문과 물결무늬, 칼집의 패용 장식과 가죽 끈, 칼집 상단의 테두리와 하단의 마개 등은 모두 조선의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들이다.
* 주칠: 누런색이 조금 섞인 붉은색의 칠
* 은입사: 청동이나 철, 구리 등 금속에 은실을 이용하여 문양을 넣는 세공 기법
* 명문: 글로 명백히 기록된 문구
당시 도검 제조기술이 발달한 일본 도검의 요소도 일부 적용되었는데, 슴베와 칼자루를 결합했을 때 구멍을 맞추고 못을 끼워 고정하기 위한 목정혈(目釘穴), 칼자루를 단단하게 쥘 수 있도록 가죽끈을 엑스(X)자로 교차해 감은 방식, 칼날이 휘어진 곡률이나 혈조(血漕, 피홈)를 넣는 방식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 혈조: 칼날에 홈을 낸 것으로 피가 흘러나오도록 만든 것임
「이순신 장검」은 다음의 이유에서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할 가치가 충분하다. ▲ ?이충무공전서?의 기록과 일치하는 칼날에 새겨진 시구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유물로 가치가 탁월하고, ▲ 칼자루 속 슴베에 1594년 태귀련, 이무생이 제작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어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분명하며, ▲ 군사사 분야에 있어서도 조선 도검의 전통 제작기법에 일본의 제작기법이 유입되어 적용된 양상을 밝힐 수 있으므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 칼날의 예리함과 견고함, 칼날에 새긴 명문 및 물결무늬 선각장식의 기술성, 칼자루 및 칼집의 테와 고리를 장식한 은입사기법, 가죽・금속・칠 등 다양한 전통공예의 조화로운 활용, 세련된 균형미와 조형감각 등 뛰어난 제작기술과 수준 높은 예술성을 두루 갖추었고, ▲ 제작연대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참고로, 「이순신 장검」은 당초 외날이라는 형태적 특성상 「이순신 장도」라는 이름으로 지정 예고되었으나, ▲ 전통적으로 유형에 따른 ‘도’와 ‘검’의 구분은 있었으나 고대에 이미 명칭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는 점 ▲ ‘검’이라는 단어는 권위와 의례와 관련되어 칼의 격을 높일 때 사용한다는 점 ▲ 특정 소장자를 강조하거나 용도가 확실한 경우 외날이어도 ‘검’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 ▲ 오랜 기간 ‘장검’으로 인식되고 불렸다는 점을 인정하여 「이순신 장검」이라는 명칭으로 국보로 지정하였다.
「요대함(腰帶函)」은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어 있는 「요대(腰帶, 허리띠)」를 담아 보관했던 원형의 나무함으로, 함 속에 요대를 넣고 뚜껑처럼 덮는 형식이다.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일정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 세우고 판재에 베 싸기를 한 후 겉은 흑칠, 안은 주칠을 하였다.
* 아름드리: 한 아름이 넘는 큰 나무
조선의 전통적인 공예기법과 높은 기술 수준으로 제작되었고, 비슷한 다른 유물들에 비해 크기가 매우 크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또한 당시의 관복 및 요대의 보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학술적・자료적 가치도 높다. 따라서 「요대함」이 이미 지정된 「요대」와 함께 보존될 때, 해당 유물의 가치가 동반 상승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보존・관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어 이번에 추가로 보물로 지정하였다.
이번에 같이 보물로 지정된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는 10대 때부터 묵란(墨蘭)을 즐겨 그렸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난초를 서예의 필법으로 그려야 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달준(達夋)이라는 인물에게 그려준 이 작품은 화면 가운데 난초를 옅은 담묵으로 그리고, 주변에 회화사상 보기 드문 수준의 높은 격조(格調)를 담은 제발(題跋)을 4군데에 썼다. 글씨는 여러 서체를 섞어 썼으며, 글자 모양과 크기에 차이가 있다.
* 격조: 품격과 취향
* 제발: 그림의 제작 배경, 감상평 등을 기록한 것
19세기 문화사를 상징하는 김정희의 학문과 예술 세계를 종합적으로 대변하는 작품으로 높은 예술적・학술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인장을 통해 전승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보물로 지정된 「기장 고불사 영산회상도」는 화기에 있는 기록을 통해 1736년(영조 12)에 제작된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이다. 제작한 화승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특색 있는 머리 모양, 여래를 중심으로 짜임새 있고 안정적으로 구성된 구도와 배치, 채도가 낮은 적색과 녹색의 강한 대비 등으로 볼 때 경북지역, 특히 팔공산 일원에서 활약한 의균(義均)화파의 화승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 화기: 그림의 제작동기, 제작자, 제작시기, 봉안처 등 여러 중요 정보가 담긴 기록
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비단 바탕에 색을 칠해 표현하였는데, 꽃잎형 광배를 갖추고 불단 형식 대좌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 8위의 보살과 사천왕, 십대제자 등의 권속들을 위계와 역할에 맞게 좌우로 배치하였다.
* 영축산: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영산불국(靈山佛國)을 의미하며 영산이라고도 함
* 광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것
* 불단: 법당 정면에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제단으로 수미단이라고도 함
* 대좌: 부처님이 앉거나 서는 자리
* 결가부좌: 부처님이 앉는 자세 가운데 하나로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얹은 다음 왼발을 오른 허벅지 위에 얹어 앉는 자세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한 영산회상도이면서 권속으로 아미타팔대보살에 속하는 지장보살을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형식은 19세기 경상도 일대와 서울, 경기도에서 제작되는 후불도의 한 유형이다. 제작시기가 그보다 앞선 18세기 전반인 것으로 보아, 이러한 형식을 가진 후불도의 최초 제작시점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를 지닌다.
또한 석가 신앙과 아미타 신앙의 융합을 보여주는 자료로써 조선 후기 불화의 형식과 신앙 변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더불어 도설된 내용과 화기에 기록된 화제가 일치하여 18세기 전반 영산회상도 도상 연구의 기준이 되므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
* 후불도: 법당 중앙에 신앙 대상인 불상을 봉안하고 그 뒤에 거는 불화
* 도설: 그림을 곁들여 설명함
* 도상: 종교나 신화적 주제를 표현한 미술 작품에 나타난 인물 또는 형상
보물로 지정된 「파주 보광사 동종」은 주성기(鑄成記)를 통해 천보(天寶)가 청동 300근을 들여 1634년(인조 12) 제작하였음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동종이다. 중국종의 형식에 우리 고유의 미감을 반영하는 조선 전기(15~16세기) 동종의 새로운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 주성기: 종의 제작 배경, 제작자, 재료 등의 내용을 담은 기록
* 천보: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에 활약한 승려 장인
세 줄로 만든 횡대로 종 몸체가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는데, 상단에는 분할주조방식을 엿볼 수 있는 형틀 분리의 모습이 보이며, 하단에는 반듯한 해서체로 적은 주성기가 보이는데 이를 통해 동종의 제작연대와 목적, 봉안 지역과 사찰, 발원자와 후원자, 장인과 재료 등 중요하고 다양한 내력이 분명하게 확인되어 사료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천보(天寶)의 마지막 작품으로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의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예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조선 후기 동종 제작기법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원 봉안처를 떠나 옮겨지는 일이 많은 다른 동종들과 달리 최초 봉안처에서 온전히 그 기능을 수행하며 잘 보전되어 온 점에서 그 역사성도 인정될 수 있어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로 지정된 석왕사 소장 「불조삼경」은 원나라 판본을 바탕으로 1361년(공민왕 10) 전주의 원암사(圓嵓寺)에서 번각한 목판본이다. 중국 원나라 고승인 몽산(蒙山) 덕이(德異, 1231~1308)가 석가(釋迦)와 조사(祖師)가 설법(說法)한 3가지의 경전을 결집한 불서(佛書)이다. 불교의 교훈적 가르침을 쉽게 설명하고 있어 불교 경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을 주는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불조삼경’의 고려시대 판본은 현재 3종만이 알려져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1341년(충혜왕 복위 2)의 정각사 판본, 1361년(공민왕 10) 전주 원암사에서 간행된 판본 및 1384년(우왕 10)에 간행된 판본이 현존하고 있다. 석왕사 소장 「불조삼경」은 인쇄 및 보존상태 등에서 선본(善本)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므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이순신 장검」, 추가로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유물 일괄 *요대함 추가」, 보물로 지정된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 「기장 고불사 영산회상도」, 「파주 보광사 동종」, 「불조삼경」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행정의 자세로 협조하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저작권자 ⓒ 강화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수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