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는 재작년 나폴레옹 사망 200주기를 맞아 유난을 떨었다. 파리 앵발레드 군사박물관에 있는 나폴레옹 무덤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이 참배했다. 특히 나폴레옹재단은 2021년을 ‘나폴레옹의 해’로 명명하고, 그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할 수 있는 유물과 사료 등을 나라 곳곳에 전시했다.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다시 보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폴레옹은 영웅의 대명사다.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등에 소재로 쓰였으며 심지어 화폐와 술병 이름에도 등장한다. 프랑스를 잘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나폴레옹의 이름과 말을 탄 그의 화상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면 그는 진정한 영웅인가. 유럽 역사를 꿰뚫어 보면 그는 ‘모순의 영웅’이다. 영웅성 이면에는 매우 파괴적인 면모가 있다.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왕국의 변두리였던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난 그는 1799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뒤 공화국을 없애고 황제에 올라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한 프랑스혁명(1789년)을 퇴보시켰다. 또 검열제도를 확대해 비판 여론을 단속하는가 하면 관변 언론을 동원해 철혈 통치자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에 실망한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던 계획을 철회했다.
가장 큰 죄악은 정복욕을 채우기 위해 유럽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무모하게 러시아 원정을 감행해 그의 군대 61만명 중 40만명이 죽고 10만명이 포로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유럽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쳤기에 그의 사망 이후 유럽의 외교사는 “어떻게 하면 이런 인물이 다시 유럽을 집어삼키는 걸 막는가”를 기준으로 진행될 정도로 모든 유럽 국가들이 포스트 나폴레옹의 출현을 경계했다. 이런 배경으로 독일에서 히틀러가 등장했을 때 나폴레옹의 재림으로 여겨졌으며, 히틀러는 파리를 함락시킨 뒤 나폴레옹 묘를 참배 했다고 한다.
또 다른 ‘대표 영웅’인 몽골의 칭기즈칸(1162~1227) 역시 침략을 빼면 인생에서 남는 게 없다. 국경을 맞댄 중국은 물론, 수만㎞ 떨어져 원한이나 이해관계 대립이 있을 수 없는 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들까지 무차별 도륙했다. 유일한 동기라면 지칠 줄 모르는 정복욕이다. 때문에 수천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특히 상대국이 저항하면 성을 함락한 뒤 남녀노소 모두 죽였다. 전쟁 역사상 유례가 드문 야만성과 잔혹함을 드러냈다.
우리나라도 고려 때 몽골로부터 6차례나 침략당했다. 강화도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때다. 몽골군이 고려에 첫 침입한 이듬해인 1232년 개경에서 강화로 수도가 옮겨진 이래 강화는 38년간 고려의 도읍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육지의 백성들은 몽골군의 살육과 노략질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럼에도 칭기즈칸에 대한 찬양은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돼 있다. 우리나라는 ‘소설 칭기즈칸’ 등 그의 일대기를 미화한 책이 여러 권 발간됐다. 광고에도 등장했다. 한 기업체의 TV광고에서 칭기즈칸이 말에서 포효하다가 갑자기 양치기의 모습으로 바뀌더니 “칭기즈칸에게 열정이 없었다면 이름없는 양치기에 그쳤을 것”이라는 멘트가 나왔다. 기업의 ‘열정’을 강조하기 위해 칭기즈칸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의 영웅성을 멜로디로 찬미한 대중가요들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팝송 ‘칭기즈칸’이다. 몽골 국민들이 칭기즈칸을 섬기는 태도는 당연히 극진하다. 거의 신격화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높이 40m에 이르는 동상(세계 최대 기마상)을 비롯해 관광상품 상당수가 칭기즈칸과 관련돼 있다. 그들이야 칭기즈칸이 자기 조상이니까 그렇다 치더라고, 많은 나라 사람들이 칭기즈칸을 추앙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칭기즈칸과 나폴레옹에게 영웅이라는 칭호가 붙여지기까지 수많은 민초들이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어갔다. 하지만 칭기즈칸과 나폴레옹은 절세의 영웅으로 남아 아직까지 영화와 책 등에서 살아 있다.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이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까지 본받아야 할 표상처럼 여겨진다. 칭기즈칸이 양치기에 불과했다면 이 기막힌 ‘모순’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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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벽하 기자 다른기사보기